안녕하세요, 오늘은 척수손상 환자분들이 가장 흔하게, 그리고 가장 괴롭게 겪으면서도 의외로 잘 정리된 정보가 없는 주제, 신경병성 통증에 대해 자세히 다뤄봅니다.
“감각도 없는 다리가 불타는 것처럼 아프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전기가 통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게 바로 신경병성 통증입니다. 척수손상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겪고, 잠과 기분, 재활 의욕까지 갉아먹는데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참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이 통증이 무엇인지, 왜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스리는지 차근차근 정리하겠습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용이며, 특히 약물은 모두 의사의 처방·조절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절대 임의로 약을 시작하거나 용량을 바꾸지 마세요.
먼저, 모든 통증이 같은 통증은 아닙니다
척수손상 후의 통증을 다스리는 첫걸음은 “내 통증이 어떤 종류인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종류에 따라 치료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통각성 통증은 실제 조직에 무리가 가거나 다쳐서 신경이 그 사실을 ‘정확히’ 보고하는 통증입니다. 척수손상 환자에게 가장 흔한 예가 휠체어를 밀거나 이동(트랜스퍼)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어깨·팔의 근골격 통증이고, 꽉 찬 방광이나 장에서 오는 내장 통증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통증은 ‘고칠 수 있는 물리적 원인’이 있습니다.
신경병성 통증은 다릅니다. 다친 곳이 계속 아픈 게 아니라, 손상된 신경계 자체가 잘못된 통증 신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손상 부위를 기준으로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손상 레벨 주변에 띠처럼 둘러지는 손상부위 통증(at-level)과, 손상 부위보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손상아래 통증(below-level)입니다. 특히 후자는 평소 감각이 거의 없는 부위에서 통증만 느껴져서, 마치 ‘환상통’처럼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신경병성 통증은 어떤 느낌일까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렇게 묘사됩니다. 불타는 듯한 작열감, 찌릿한 전기 충격, 쑤시고 찌르는 느낌, 바늘로 콕콕 찌르는 저림, 시린 느낌 등입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특징은, 감각이 거의 없는 부위가 아프다는 점입니다. “느낌도 없는 발이 어떻게 아플 수가 있지?” 싶지만, 이것이 신경병성 통증의 본질입니다. 또 가벼운 스침이나 이불의 무게, 바람 한 줄기에도 통증을 느끼는 이질통(allodynia)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흔하고, 왜 생길까
척수손상 후 만성 통증은 환자의 약 60~80%가 겪을 만큼 흔하고, 그중 신경병성 통증은 약 40~57%에 이릅니다. 손상부위 통증은 비교적 일찍(수주~수개월), 손상아래 통증은 더 늦게(수개월~1년 이후)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리를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척수가 손상되면 신경계가 스스로를 ‘잘못된 방향으로’ 재배선합니다(부적응적 가소성). 척수와 뇌의 통증 신경세포가 지나치게 예민해지고(중추감작), 손상 부위 아래 신경세포들이 외부 자극이 없어도 제멋대로 발화합니다. 한마디로 몸의 경보장치가 고장 나서, 보고할 일이 없는데도 계속 울리는 상태인 것이죠. 그래서 일반 진통제로는 잘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 평가하나 — 분류가 곧 치료입니다
의료진은 통증의 위치를 손상 레벨과 대조하고, 어떤 느낌인지, 무엇이 통증을 악화·완화시키는지 면밀히 살핍니다. DN4 같은 신경병성 통증 선별 설문이 쓰이기도 합니다(척수손상에서 정확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 종류에 따라 치료가 완전히 갈리기 때문입니다. 어깨의 근골격 통증은 자세 교정·물리치료·소염제로 접근하지만, 신경병성 통증은 그런 방법에 잘 반응하지 않고 전혀 다른 약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신경병성 통증을 “그냥 근육통이겠지” 하고 넘기면 엉뚱한 치료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약물 치료 — 반드시 의사와 함께
신경병성 통증 치료의 국제 지침(CanPain SCI 등)에서 권하는 약은 일반 진통제가 아닙니다. 아래 내용은 모두 의사가 처방하고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영역이며, 환자가 스스로 시작하거나 바꿔서는 안 됩니다.
1차 약물로 가장 근거가 탄탄한 것은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입니다. 둘 다 흥분한 신경의 통증 신호를 가라앉히는 약으로, 연구에서 위약 대비 통증을 30~50% 줄여준 것으로 보고됩니다. 다만 졸림, 어지럼, 부종, 체중 증가 같은 부작용이 있어 낮은 용량부터 천천히 올려야 합니다. 삼환계 항우울제(아미트립틸린)도 쓰이지만 입마름·변비·졸림 등 부작용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합니다.
반대로, 흔히 기대하는 것과 달리 근거가 약하거나 권장되지 않는 것들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둘록세틴(다른 신경병증엔 쓰이지만 척수손상에선 근거 부족), 대마(카나비노이드, 근거 불충분)는 아직 확실하지 않고, 레베티라세탐·멕실레틴은 효과가 없어 권장되지 않습니다. 장기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도 득보다 실이 많아 일차로 권하지 않습니다.
약 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
신경병성 통증은 약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 방법을 함께 쓰는 ‘다학제 접근’이 핵심입니다.
환자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부분으로는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 수면 관리, 기분 관리가 있습니다. 통증과 불면·우울은 서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라, 잠과 기분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통증 체감이 달라집니다. 인지행동치료(CBT)와 마음챙김은 통증 자체보다 ‘통증이 삶을 방해하는 정도’를 줄이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됩니다.
전문적인 치료로는 경두개자기자극(rTMS)이 최근 가장 주목받습니다. 2026년 발표된 메타분석에서 척수손상 신경병성 통증을 유의하게 줄였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다만 연구마다 편차가 커 아직 ‘유망한’ 단계입니다). 그 밖에 경두개직류자극(tDCS), TENS(경피 전기신경자극), 난치성의 경우 척수자극술 등이 시도됩니다.
꼭 알아두실 ‘빨간 불’ 신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당부입니다. 신경병성 통증이 있다고 해서 모든 통증을 똑같이 여기고 참으시면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으면 약을 늘릴 게 아니라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통증이 새로 생기거나, 점점 위쪽(손상 부위 위로)으로 올라가는 경우, 새로운 근력 약화나 감각 소실이 동반되는 경우, 경직이 갑자기 심해지는 경우 등입니다. 이는 척수 안에 물주머니가 생기는 외상후 척수공동증(syringomyelia) 같은 합병증의 신호일 수 있어, MRI 등 정밀 평가가 필요합니다. 척수공동증은 손상 후 수개월에서 수십 년 뒤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내 통증이 근골격성인지 신경병성인지 구분하는 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다. 둘째, 신경병성 통증은 일반 진통제가 아닌 전용 약(프레가발린·가바펜틴 등)과 운동·수면·심리치료·신경자극을 함께 쓴다. 셋째, 약은 반드시 의사와 함께 조절하고 임의로 바꾸지 않는다. 넷째, 새로 생기거나 위로 올라가는 통증·근력 저하는 빨간 불이니 즉시 진료받는다.
신경병성 통증은 “참아야 하는 숙명”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증상”입니다. 혼자 참지 마시고, 재활의학과나 통증 전문의와 본인에게 맞는 치료 계획을 꼭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도 도움이 되는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Reference
- The CanPain SCI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for neuropathic pain: 2021 update (Spinal Cord)
- International Spinal Cord Injury Pain (ISCIP) Classification (NCBI/PMC)
- Chronic Pain After Spinal Cord Injury (MSKTC 팩트시트)
- Prevalence of neuropathic pain following SCI: meta-analysis (Burke et al., Eur J Pain 2017)
- rTMS for SCI neuropathic pain: systematic review & meta-analysis (Frontiers in Neurology, 2026)
- 신경병성 통증 (MSD 매뉴얼 일반인용)
- 통증 (Christopher & Dana Reeve Foundation, 한국어)